역사 속의 이야기인 진실 !!!! ․


김안국과 이웃집 처녀

경상도 청도군 풍각면 안국동은 모계동이라고도 하며 면소재지에서 창녕가는 길 옆에 가리잡고 있는 이 동네는 남원양씨의 세거지이기도 하다.

이 동네 이름의 유래는 김안국 선생이 경상도감찰사로 있을 때 어느 문서에 안국동이라 되어 있어 자신의 이름과 글자도 똑같은 안국이니 자기의 호인 모재를 따서 모재동이라 하라는 말로 모재동이라 부르게 되었으나 오랜 세월에 와전되어 지금은 냇물도 뒷산의 수목들도 없어 졌지만 옛날에는 이 바위 밑에 맑은 냇물이 소를 이루어 감돌고 뒷산에는 수목이 울창하여 경치가 아름다원 시인 묵객이 찾았던 명승지이며 회재 이언적 선생이 내유한 적도 있다고 한다.

'모재 김안국' 선생은 본관이 의성이며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문인으로 벼슬이 좌찬성으로 대제학, 병조․예조판서, 세자이사를 겸하였다. 시호는 문경이고 후에 인종묘정에 배향하였다.

초여름 밤 창 밖에는 훈훈한 꽃향기가 달빛에 젖어 있었다.
오늘도 낭랑한 음성으로 글을 읽고 있는 김안국은 글에 도취하여 무릎을 치기도 했다.

"꾀꼬리 우는 산골짜기의 어울어진 칡덩굴을 마음껏 끊어다가 청울치를 벗겨 갈포치마를 짜 입으니 옷으로는 제일이라고 옛날의 성군 문황의 아내가 손수했다는 글이다.
숙녀는 과연 이처럼 검소하고 근로도 해야 될 것이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안국의 머리에는 이제까지 잊으려고 애써 오던 이웃집 처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따금 선연한 자태를 나타내는 그 처녀의 점잖고도 아리따운 모습 ! "요조숙녀란 그러하리라 혹시 그 색시가 이몸과 무슨 연분이라도……?"

이런 공상까지 하던 안국은 "안되겠다."하고 다시 마음을 가라앉혀 글을 읽기 시작했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안국의 글읽는 소리만이 밝은 달빛 아래 조용히 흘러 나왔다.
환상일까. 언제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게 안국의 눈앞에 나타나 서있는 여인! 환상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글을 읽다보니 뚜렷이 사람의 체취가 스며들지 않은가 가느다란 허리에 휘감겨 늘어진 치맛자락이 향취를 풍기고 구름장 같은 머리채, 반달같은 얼굴에는 재기에 찬 안광이 약동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이웃집 처녀. 마음속으로 사모하고 있는 그 처녀였다.

안국의 젊은가슴은 마구 울렁거렸다.
무의식 중에 숨소리를 내뿜었다. 선뜻 일어서서 처녀의 허리를 껴안았다가 앉히려고 일어서려는 순간 안국의 다리가 가볍게 떨렸다. 머리가 아찔했다.

안국은 학문으로 연마된 지조라 할까 양심이 있기 때문이었다.
안국은 다시 정좌하여 눈을 감았다. 요조숙녀와 군자가 과연 이렇게 만나서 되는 것일까?
얼마 동안 생각한 안국은 처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웃집 처녀신데 웬일이시오. 혹시 무엇에 놀라서 피신차로 들어오셨나요?"

그제야 처녀는 실날같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 것이 아니에요 너무나 도련님 글 읽는 소리가 좋으시기에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끝을 못하는 처녀의 눈에선 구슬 같은 눈물이 한방울 흘렀다. 안국은 또 눈을 감았다.

"처녀의 몸으로 달밤에 화원을 거닐다가 춘정을 못이겨 사나이 방문을 열고 들어온 모양이니……"
다시 눈을 뜨고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빨리 나가시오."
하고 한 마디로 물리쳤다. 그러나 처녀는 꼼짝도 하기 않고 날잡아 잡수소서 하는 태도였다.

안국은 소리를 가다듬어 "이 사람이 방금 읽던 글귀절도 알아들었겠구료?
요조숙녀에 군자 물론 군자. 숙녀간의 양성지합이라고 반드시 부모가 맺어주는 절차에만 의하라는 법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처녀와 나의 이 자리처럼 야비하게 만나서는 안 될 것이요.
도대체 사람으로서 못할 일은 어둔 밤에 세상의 이목을 피하고 양심을 속이는 일이라!"
하고 타이르고 처녀를 쳐다보니 그 눈에는 원망이 어려 있었다.

"만일 처녀가 오늘 이러한 거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야말로 은근히 처녀를 숙녀로 여기고 사모하던 중이니 당당히 부모를 움직여 통혼이라도 할뻔한 일을! 이렇게 된 바에야 처녀와 이 사람 사이는 영원히 끊어진 셈이요. 그리 알고 빨리 물러가서 처녀의 마음이나 고쳐 자기고 요조숙녀가 다시 되어 좋은 군자의 배필이 되어 가시기 바라오."

안국은 약간 슬프고 엄숙한 목소리로 말끝을 맺었다. 마침내 처녀는 무안한 얼굴로 방문을 열고 나가고야 말았다.
그러나 나간 처녀의 모습이 또 다시 방안에 나타났다.
종아리채 한 다발을 안고 들어온 것이다. "자로 하여 이 몸이 잘못된 죄를 깨달았으니 종아리를 때려 주세요." 하고 조용한 말고 더불어 매다발을 내려놓았다.

안국이 뭐라도 입을 뗄 사이도 없이 처녀는 치맛자락을 성큼 걷어올리고 하얀 다리를 내놓았다.
꽃향기처럼 풍겨드는 미녀의 체취에 안국은 마음이 흔들렸으나 억지로 마음을 가다듬어 "당연히 종아리를 맞을 일이지."
생각하고 두서너개의 회초리를 떨리는 손에 들고 딱! 딱! 때리고는 힘없이 회초리를 떨어뜨렸다.

"그만 나가시오." 그러나 처녀는 "더 때려 주세요."
안국은 기가막혀 어리둥절했다. 그래도 남자의 마음으론 이 이상 더 때릴 수 없어 매를 멈추니 "진정 말씀이이예요. 종아리에서 피가 나고 흉터가 나도록 때려 주셔야만 오늘 이 자리 일이 생전 제 마음에 깊이 박혀서 방탕한 마음을 고치겠어요."

처녀의 입에서 이런 말까지 나왔다. 그제야 안국도 다시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회초리를 들어 눈을 딱 감고 힘차게 두세 번 쳤다.
처녀는 몸을 움찔하고 자리에 주저앉아 눈을 감은채 치맛자락으로 다리를 싸감았다.
그리고는 다시 엎드려 울고는 벌떡 일어나 문밖으로 나가 버렸다.
자리에서는 진홍빛 몇 방울의 피가 흘러 있었다.

이튿날부터는 이웃집 처녀의 모습을 볼 수 없었고 그 집 역시 먼 곳으로 이사를 가고 말았다.
김안국은 그후 학문과 지조가 일국의 대학자로 칭송을 받고 벼슬이 대제학에 이르렀으나 항상 전원생활을 그리며 갈망하고 있었다.

이때 기묘사화가 일어나 관직에서 쫓겨나서 여주 시골로 낙향을 했다. 시골에서 호미를 들고 농민들과 벗이 되어 주경야독을 했는데 이때 김안국은 떨어진 쌀 한 톨, 콩 한 알이라도 심지어 싸래기와 겨 한움큼까지 모아 저장했다.

"원 점잖은 학자님, 재상으로 이삭을 줍고 싸래길 주워가며 잘게 굴다니."
하고 속 모르는 사람들이 흉을 보기도 했다.
이처럼 정․근․상․밀을 주장하는 선생의 경제관은 자기만을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
그렇게 알뜰히 모은 곡식과 또 마을의 농군들로 하여금 이같은 방법으로 공동저축한 곡식을 가지고 연못가에 정자도 짓고 동산에도 강당도 세웠다.
그리고는 농민들과 그 자녀들을 틈틈이 모아놓고 글이며 일이며 행실을 가르쳤다.

〈동몽선습〉이란 책도 이때에 선생이 만든 교과서였다.
심지어 부녀자들까지 이렇게 모아 교화(敎化)하는 한편 빈궁한 그들에게 저축한 곡식을 풀어서 많은 구제를 하고 보니 선생의 문전에는 고아와 과부들까지 줄을 지어 드나들게 되었다 한다.
이런 소문은 마침내 서울까지 퍼져 들어갔다.
서울에는 아직도 기묘사화를 일으킨 당파들이 선생의 시골살이에까지 일거일동을 주시하는 중에 이같은 소문이 들어가고 보니 흉을 잡기에 알맞았다.

"김안국이 시골에 가서 과부들을 유린한다."
"가난한 백성들의 뒷밭 곡식을 긁어모아다가 정자를 짓고 전장을 꾸민다."
등 악평이 나고 필경에는 "소인 김안국이 시골에서 교화를 빙자해서 농촌 자녀들을 유인 작당하는 꼴이 장차 기묘사화의 분풀이 겸 조정을 반격하자는 역모의 시초다."
하며 곡해와 모함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무렵 대사헌 양대감(그 연대 대사헌이였던 양연 선생 같으나 고증이 없다)의 집에서는 어느날 조정에서 아우 양감찰과 함께 퇴청해 나와 어머님께 문안을 들이고 난 자리에서 형제간의 이야기가 오고 갔다.

"기어코 김안국을 역적으로 잡아올리기로 조회는 결정되었거니와 과연 유죄로 할까?"
"유죄로 하지요. 그런 소인이고 간사한 자가 역적질인들 않을라고요?"
"소인이라니?"
"아 쌀 한 톨, 보리 한 알갱이를 제 손으로 다 주어 모은다니 모리배 소인이지 뭐예요?"
"그리고 시골 과부들이 제집처럼 드나든다는데."
"여자란 가까이 하면 탈이 나고마는 법이거든."
"학자인척하며 그런 소인의 음란한 행세를 하는 자가 역적 뜻인들 안 품을 턱 있나?"

이런 형제의 이야기를 곁에서 듣다가 얼굴색을 변하는 이가 있었으니 그 형제들의 어머니 노부인이었다.

"너희들 그게 무슨 소리냐? 김안국이 역적 소인이라고 부르고서 국사에 상관하랴마는…… 그러나 너희가 법관들인데 일을 그릇되게 처단하면 어미의 걱정도 되지 않겠느냐?"
"그러나 어머님이 김안국을……?"
"이 어미가 김안국의 인물됨을 잘 알고 있단다. 김안국은 결코 역적질할 소인이 아니리라."

그러나 아들들은 종시 어머니의 말을 객담으로 돌렸다.
여주 지방에서 들려온다는 소문을 하나하나 들어 말씀 올리며 김안국이 음란한 소인이요.
조정에 대해서도 역모를 품고 있음이 틀림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명일로 김안국에서 체포령을 내리도록 하자고 서두르는 두 아들의 기색이자 어머니는 벌떡 일어섰다.

반백이 된 노부인은 가을국화같이 여윈 얼굴에 처참한 기색이 굽이쳐 흐르며
"너희들 이것 봐라." 하고 다리 위의 옷을 걷어올렸다.
"자세히 봐!" 두 아들의 눈길이 어머니 종아리 위로 보내졌을 때 한 치 가량 알연히 보이는 상처 흔적이 있지 않는가?

"이것은 그 어른한테 종아리 맞은 흉터다." 두 아들은 어리둥절했다.
"그래도 짐작을 못하느냐 이것이 옛날 네 어미가 김안국의 방에 들어갔다가 종아리를 맞고 쫓겨나온 흉터란 말이다."

두 아들의 얼굴이 붉어지다가 흙빛이 되었을 때 노부인은 다시 정색했다.
"그처럼 어둔 밤에도 양심을 지키며 여자를 멀리 하던 학자이신 김안국인데 무슨 소인이 되며 과부를 어쩌느니 역적질을 하느니 할 리가 있느냐?"

노부인은 그제야 처녀시절에 김안국의 집과 이웃에 살 때 안국의 글 읽는 방에 사모해 들어갔다가 톡톡히 망신과 훈계를 당한 얘기며 또는 종아리를 맞고 개심을 해가지고 종내 너희 아버지 가문으로 시집을 왔노라고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두 아들은 묵묵히 어머니의 앞을 물러나왔다. 진정은 김안국은 대인군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무한이 고맙게도 여겼다.

"김안국이 어릴 적에 그렇게 해주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 어머니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저렇게 훌륭한 우리 어머니도 안되었을 것이다."
그제야 김안국을 구원해 주어야 하겠다고 결심을 한 양사헌 형제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렇지, 이제 깨닫겠다. 세상에 역적이다. 간신이다. 하는 자들이 음흉한 짓을 하려면 으레이 남 모르게 비밀리 하는 법이지 김안국처럼 공공연하게 부인들을 구제하고 응접할 턱이 있나?
역모할 작당을 할 때라도 역시 은밀히 할 일이지 백주 대강당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강론을 할 리가 있나?"*

이렇게 단정을 내린 양대사헌은 이튿날 조정에 들어가 극력 김안국의 인격의 됨됨과 무죄함을 역설했다. 이로 해서 선생은 무사했고 뒤에 다시 대제학에 올랐다.


출처:http://www.cheongdo.go.kr/culture/famous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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