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성(義城)김씨 ●


▶시   조:김■석(金錫)
▶집성촌:경북 봉화군 봉화면 해지리

▶본관 및 시조
시조 김석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이며, 고려 태조(왕건)의 외손(外孫)으로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本貫)을 의성(義城)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으며,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석’의 9세손 용비(龍庇)가 태자첨사(太子詹事:동궁의 정3품 벼슬)를 지냈고, 용필(龍弼)은 수사공(守司空)을 역임하였다.

고려 때 무관 광부(光富)는 1362년(공민왕 11년) 홍건적을 격퇴한 공(功)으로 2등공신이 되었고, 1379년(우왕 5년) 도순문사(都巡問使)가 되어 가수현(嘉樹縣)에 침입한 왜적과 싸우다가 순절(殉節)하여 충의단(忠義壇)에 제향(祭享)되었으며, 거두(居斗)는 영주부윤(瀛州府尹)과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지내고 가선대부(嘉善大夫:종2품인 문무관)에 올라《삼국사기》의 발문을 썼다.

고려에서 명성을 날린 의성김씨는 조선조에서도 명문의 대(代)를 이어 가문을 빛낸 인물들이 많았다.

병조참판(兵曹參判)을 역임한 영렬(英烈)은 1404년(태종 4년) 추충분의좌명공신(推忠奮義左命功臣)에 올라 왕명으로 회맹록(會盟錄:공훈이 있는 사람의 이름을 적은 책)에 기록되었으며, 문신으로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워 용맹을 떨친 제민(齊閔)은 당대의 명신(名臣) 이항(李恒)의 문하에서 글을 배워 1573년(선조 6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고 낭관(郎官)을 거쳐 화순현감(和順縣監)․순창군수를 지낸 뒤 병으로 사퇴하여 역문연구에 몰두하여 많은 저서를 남겼다.

이렇게 명문 의성김씨의 가문을 빛낸 인물들 중에 특히 안국(安國)과 정국(正國) 형제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모재(慕齋) 안국은 용필(龍弼:수사공)의 11세손으로 일찍이 한훤당(寒暄堂) 김굉필의 문하에서 수학(修學)하여 1501년(연산군 7년) 생원(生員)․진사(進士) 시험에 합격하고, 2년 뒤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 승문원(承文院)에 등용되어 박사(博士)․부수찬(副修撰)을 역임한 후 예조참의(禮曹參議)․대사간 공조판서 등을 지냈다.

1517년(숙종 12년) 경상도관찰사가 되어 각 향교(鄕校)의〈소학(小學)〉을 권하고「벽온방(辟瘟方:의관 김순몽, 유영정, 박세거 등이 엮은 의서)」․「창진방(瘡疹方:세조 때 임원준이 쓴 전염병을 논한 의약서)」등을 간인(刊印)하여 보급하였다.

그외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고 대제학(大提學:홍문관, 예문관의 정2품 벼슬)․찬성(贊成)을 지낸 후 1541년(중종 36년) 병조판서에 올라 태지(苔紙:가는 털과 같은 물이끼와 닥나무를 섞어서 만든 종이)를 만들어 왕에게 바치고 이를 권장했다.

특히 그는 조광조와 함께 지치주의(至治主義:정치를 가장 이상적으로 다스리는 사상)를 강력하게 주장했고, 성리학을 포함하여 천문․주역․농사․국문학 등에 조예가 깊어 많은 저서를 남겼다.

사재(思齋) 정국은 형인 안국과 함께 김굉필의 문하에서 글을 배워 1509년(중종 4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장원으로 급제, 사가독서(賜暇讀書:휴가를 얻어 집에서 공부함)를 한 후 이조정랑(吏曹正郞)․사간 등을 지낸 후 승지에 올랐다가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삭직되어 고양(高陽)으로 내려가 학문에 열중하다가 1537년(중종 32년) 복관되고 전라도관찰사가 되어 편민거폐(便民袪弊:백성의 편리를 위하여 폐단을 없애는 것)라는 시정책(施政策)을 건의하여 시행케 했으며, 병조(兵曹) 및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역임한 후 예조․병조․형조참판을 지냈다.

용비(龍庇)의 12세손 성일(誠一)은 이퇴계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선조 때 등제하고 봉교(奉敎)를 시작으로 여러 벼슬에 올랐다가, 초유사(招諭使:난리가 일어났을 때 평정하기 위하여 백성을 타이르는 일을 맡아보던 임시 벼슬)를 거쳐 경상우도관찰사 겸 순찰사를 지냈다.

삼척부사 희삼(希參)의 아들 우옹(宇顒)은 조남명(曺南溟)과 함께 퇴계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워 명종 때 문과에 올라 선조 때 호당(湖堂:젊고 재주 있는 문신으로서 임금의 특명을 받은 사람들이 공부하던 곳)에 뽑혔다.

그외 부제학(副提學)을 역임하고〈개암집(開巖集)〉을 집필한 우굉(宇宏)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때 의병을 규합하여 항쟁한 통(統)이 유명했으며, 여건(汝鍵)은 숙종 때 수찬(修撰)을 지냈고, 저서로〈북천록(北遷錄)〉을 집필하였다.

영남 유림(嶺南儒林)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학자로 이름난 흥락(興洛)은 여러 차례 벼슬에 천거되었으나 나가지 않았고, 의병대장 하락(河洛)은 여러 곳의 전투에서 순절하여 문신(文臣)의 뒤를 이어 무신(武臣)으로 가문을 빛내었다.

독립운동가 동삼(東三)․원식(元植)․창숙(昌淑) 등도 일본의 강점기에 나라의 독립을 위한 숭고한 희생으로, 명문 의성김씨의 자랑스런 후손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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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역사자료실 안내 [1] 관리자 2005-01-05 37928
31 <석> 시조서열의 오류 범람 --- 네째에서 다섯째??? ChanHong 2005-01-12 8145
» 1. 의성김씨---경순왕의 넷째 아들 / 김 석 * 2005-01-12 9076
29 2. 개성김씨---석의 8세손인 공우 3째아들 / 김용주 * 2005-01-12 8630
28 3. 고령김씨---석의 9세손 용비의 손자 / 김기지 * 2005-01-12 8325
27 4. 광주김씨---석의 6세손인 언미 3째아들 / 김녹광 * 2005-01-12 9586
26 5. 금산김씨---석의 9세손 용주의 7세손 / 김문부 * 2005-01-12 8322
25 6. 삼화김씨---석의 16세손인 호지 2째아들 / 김통 * 2005-01-12 8376
24 7. 설성김씨---석의 후손(용주의 증손) / 김지선 * 2005-01-12 8646
23 8. 예안김씨---석의 10세손인 김의 3째아들 / 김춘 * 2005-01-12 9445
22 본관을 달리한 <석>시조의 후예들 ChanHong 2005-01-11 8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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