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도 모르는 체

조회 수 3731 추천 수 130 2006.11.07 07:45:41
알고도 모르는 체

"저 손님 죽은 닭 잡수시네" 라는 옛 이야기가 있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가난한 집에 귀한 손님이 왔다.
주인은 닭을 잡아 손님상에 올렸다.

그 집엔 어린애가 있었다. 그 애는 손님상에 오른 닭고기에 군침만 흘려야했다.

제삿날이나 명절이 아니면 고깃국물을 맛볼 수 없는 살림살이라 아이는
손님상위의 닭고기에 자꾸만 마음이 끌렸다.

아이는 꾀를 내어 손님 방 앞에서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머나, 저 손님은 죽은 닭을 잡숫고 있네.”
이 소리를 들은 손님은 닭고기가 든 사발에 손이 가지 않았다.

* 살아가는 데 필요한 덕목

손님이 떠나려하자 아이는 얼른 손님방에 들어가 먹다 남은 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떠나려던 손님이 아이의 행동을 보고
“얘야, 그 고기는 죽은 닭고기라 하지 않았느냐.

그런 걸 먹으면 어쩌냐.”
아이는 손님을 빤히 올려다보면서
“누구는 살아있는 닭을 먹는답디까.” 했다.

손님은 어린애의 꾀에 넘어간 것을 알고 씁쓰레한 표정을 지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이 이야기를 두고 사람들은 어른이 아이한테 속았다고 한다.
받아들이기에 따라 그런 해석이 당연한 것으로 들린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그 손님은 진정 얘한테 속은 것일까.

손님은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짐짓 속은 체 했다고 보아야 옳지 않을까.

손님은 가난한 집에 볼일 때문에 가기는 했으나 막상 자기가 받은 상에
닭고기가 올라오자 심정이 어떠했을까.

그 고기는 주인집에서는 서너 마리뿐인 닭 중에서 한 마리를 잡은 것이요,

제 식구들을 위해서도 죽이지 않는 닭인 줄 뻔히 아는데
자기 밥상에 올렸으니 선뜻 젓가락을 댈 수 있겠는가.

먹자니 안쓰럽고 안 먹자니 주인의 정성을 물리치는 것 같아 주저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때 마침 주인집 얘가
“손님은 죽은 닭을 잡수시네” 했으니
손님에게는 닭고기를 먹지 않아도 되는 좋은 구실이 생긴 것이아닌가.

그래서 옳다구나 하고 슬며서 고기를 밀쳐놓고 먹지 않은 것이리라.

손님은 떠나려할 때 그 아이가 잽싸게 자기가 있던 방에 들어가
그 닭고기를 입에 넣고 맛있게 먹는 꼴을 보고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그 아이의 얼굴에서 집에 있는 자기 얘의 얼굴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어느 부모든 자식 챙기기는 똑같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손님은 모른 체 하고 그냥 제 갈 길을 갈 것이지
왜 멈춰 서서 주인집 얘 에게  
“너 그 고기, 죽은 닭고기라면서 왜 먹는거냐”고 말했을까.
아이의 입에서 나올 답이 “죽은 닭 먹지, 살아있는 닭을 먹는답디까”라는 것을 몰랐을까.

그 답이야 예상한 게 아니던가.
아이는 손님의 예상대로 답을 했고 손님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야만 주인도 덜 면구스러울 게 아니던가.
아이는 손님을 속인 것을 고소해 하며 고기를 맛있게 먹을 것이고
주인은 손님의 마음씀씀이를 고마워하면서 배웅하지 않았겠는가.

* 남을 배려하는 마음

더불어 살아가야 할 우리네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일 것이다.

찌든 가난에도 손님상에 닭을 잡아 올리는 주인의 마음이나 그걸 앞에 놓고
언뜻 젓가락을 들지 못하고 먹기를 주저하는 그 손님.

아이의 한마디에 옳다구나 하고 슬며시 닭 그릇을 밀쳐놓는 손님의 그 마음.
이런 배려들이 바로 우리 삶을 훈훈하게 데워주는 정이 아니겠는가.

이런 이야기를 꾸며내 후세에 전해준 우리 조상의
슬기에 새삼 감사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 이진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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