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느 집이든 애들을 키우다보면 아이의 엉뚱한 질문이나, 엉뚱한 행동 때문에 당황하는 일이 많죠?
이제 일곱 살이 된 딸아이를 가진 저희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속을 섞이고 있는 문제는 성교육 문제입니다.
교육전문가들의 얘기나 책을 보면 어린이도 조기 성교육을 시켜야 하고,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 거야?', '아기는 어디서 나오는 거야?' 하는 질문에 옛날처럼 '응, 하느님이 만들어주시는 거야', '풍선처럼 펑 터지는 거야' 등 그런 허무맹랑한 대답으로 무성의하게 대하지 말고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성의껏 대답해주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딸아이가 어렸을 때, '엄마, 난 어떻게 태어났어?'라고 묻는 말에 장난 삼아, '사과처럼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기에 따왔지'라고 했더니 큰 바구니를 들고 또 애기 따러가자고 며칠을 졸라 혼난 적이 있습니다.
딸아이가 여섯 살이던 작년 어느날, 남편과 같이 TV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이러더군요.
"엄마, 나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 안다."
"어떻게 생기는 건데?"
"아빠들한테 있는 아기씨가 엄마들한테 있는 아기집에 들어가면 된다 카데."
어디서 대충 주어 들었는지 의기양양하게 아는 척 하더니 금방 또 다른 의문이 꼬리를 무는지 묻더군요.
"근데 엄마, 아빠는 아기씨를 어디에 가지고 있는 건데?"
난처하기도 하고, 물고 늘어졌다하면 사람 진땀을 쪽쪽 빼놓고야 마는 딸아이의 성격을 잘 아는 저는 불똥이 자기한테로 튈까봐 자리를 피하려 일어서려는 남편에게 바톤을 넘겼지요.
"글쎄…, 아빠한테 물어봐라."
당황한 남편은 저에게 주먹을 들어 보이지만 이미 늦었지요.
"아빠한테? 아빠 어디 있어요? 좀 보여줘요."
"그… 그… 그거는 보여 줄 수 없는 기다."
"와, 못보여 주는데예? 꽃씨 같은 것은 볼 수 있는데 씨라면서 와 못보여 주는데예? 어디다 숨겼어요? 보여줘요."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하더니 아이의 질문에는 최대한 성의껏 대답하라는 전문가의 말이 생각난 남편, 아빠 노릇 제대로 해보겠다고 작정했는지 10개월 된 아들아이의 고추를 가리키며 말해주더군요.
"아가야 처럼 아빠도 이런 것 있는데, 여기 속에 들어있는기라."
"그래예…. 그라마 어떻게 엄마한테 있는 아기집까지 가는데요?"
"그거는 말이야, 아빠하고 엄마하고 밤에 사랑하마 가는기라."
"사랑하마 간다꼬요? 아빠는 나도 사랑한다면서, 그라마 나도 아기 생겼겠네예?"
점점 진지해지는 우리 딸! 점점 뭐 마려운 표정이 되는 우리 남편! 재미있다고 보고만 있다간 남편이 KO패 당하든지, 헐크로 변할 것 같아 제가 끼어 들었죠.
"오늘은 그만 해라. 니도 크마 알게된다."
남편은 딸에게서 풀려났지만 이마엔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습니다.
그날 딸은 아들아이만 졸졸 따라다니며 세밀하게 관찰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아기가 자지러질 듯 우는소리에 놀라 뛰어가 보았습니다.
"나와! 나와! 빨리 나와! 아가야 조금만 참아, 금방 나올기다."
딸애가 애기 고추를 쥐어짜고 있는 겁니다.
"니 지금 뭐하고 있노? 애기 고추 갖고 와 그라노?"
"아빠가 고추에 아기씨가 들어 있다고 그랬는데 아무리 짜도 안나온다. 오줌눌 때도 안나오는 거 보니까 안에 꼭꼭 숨어 있는 갑다. 꼭 보고 싶은데…."
딸아이는 금방 눈을 반짝이며 생각난 듯 물었습니다.
"엄마, 아빠한테는 있겠제?"
그날부터 저는 애기 기저귀를 꼭 채워야 했고, 남편은 딸아이를 슬슬 피해 다니더군요.
며칠 후, 딸을 데리고 은행에 갔는데 쌍둥이나 들었지 싶을 만큼 배가 많이 부른 임신부가 눈에 띄자 딸은 임신한 새댁 앞에 가서는 큰소리로 이러는 겁니다.
"아줌마도 아저씨하고 밤에 사랑해서 애기가 생긴거지예?"
사람들 시선이 모두 그 새댁과 딸에게 쏠리자, 얼굴이 빨개진 새댁은 얼굴을 감싸고 뒤뚱거리며 도망갔고, 터지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려고 인상쓰는 사람, 못들은 척 귀를 후벼파는 사람, 주간지로 가리고 킥킥 웃는 사람 등등 각색의 사람들 사이로 창피함을 무릅쓰고 제가 딸아이에게 다가가자 딸이 제게 말하더군요.
"근데 엄마, 저 아줌마네 아저씨 아기씨는 억수로 큰갑다. 저렇게 배가 큰 걸 보니까…."
드디어 사람들은 그나마 참고 있던 자제력을 완전히 잃어버리더군요. 나이든 아주머니와 남자들은 노골적으로 웃어댔고, 순진한 척 애쓰며 모른 척 하고 있던 젊은 여자분들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지 최유라 씨 웃음소리에 거의 준하는 소리를 내며 주저앉더군요.
쥐구멍을 찾고 싶었지만 은행에 쥐구멍이 있을 리도 없고 난감하더군요. CCTV에 촬영이나 안됐는지 모르겠네요. 그날 은행 볼일도 못보고 쫓겨나다시피 나온 후로, 동네 사람들은 딸을 보면 웃기부터 먼저 했고, 배부른 임신부는 배를 감추고 얼른 달아나더군요.
원래 책 읽는 것을 좋아하던 우리 딸, 그후론 유난히 애독하는 책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백설공주'도 아니요, '콩쥐팥쥐'도 아닌 바로 '임신과 출산'입니다.
조그만게 그런 책을 읽고 있는 게 도무지 민망해서 아무리 못보게 숨겨놔도 기어이 찾아내서는 뭘 아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끄덕 하기도 하고, 귀찮도록 질문을 해대더군요. 그러던 어느날, 공포의 우리 딸 또 일을 저질렀습니다.
배가 부른 여자는 무조건 애기를 가진 것으로 아는 우리 딸, 시장에서 반찬가게를 하시는 나이든 아주머니의 배가 많이 부른 것을 보고 그 아주머니께 묻더군요.
"아줌마는 언제 애기 낳아예?"
황당해하시는 아주머니에게 꿀밤 한 대 쥐어 박히고야 배부르다고 다 애기 가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딸은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엄마 저 아줌마는 왜 저렇게 배가 부른건데?"
"응, 저 아줌마 배는 똥배야."
이런 일이 있고 며칠 뒤, 그 아줌마를 다시 만나자 우리 딸은 다 알고 있다는 듯 씩 웃으며 말하더군요.
"아줌마! 아줌마 뱃속에 애기 안들어 있고 똥들어 있지예?"
우리 딸 그 아줌마에게 맞은 자리 또 맞았습니다.
밤낮으로 '임신과 출산' 책을 붙들고 독학에 애쓰던 이제 7살된 우리 딸, 요즘은 거의 전문가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아줌마 태교하고 있어예? 태교도 아주 중요하다 카데예! 병원에 가서 검사도 자주 해야된다 카데예, 영양이 골고루든 음식을 먹어야 한데요…."
그러는 동안 사람들은 모두 저를 쳐다봅니다.
이종환 씨! 최유라 씨! 애가 조숙한 건가요? 호기심이 지나친 건가요?
입이 폭탄인 우리 딸 전 우리 딸 입이 무서워요. 그런데 요즘 우리 딸 이제는 사람의 인체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답니다. 어쩌면 좋죠?

▷출처: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4』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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